죽음.

혼잣말. 2008. 11. 13. 02:21


내가 '죽음'이란 걸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할머니의 죽음이었다. 중학교 3학년 여름휴가 때였다. 강원도 정선의 어느 강,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쯤 모닥불을 피우려고 하던 찰나 아버지의 폰으로 전화가 왔고, 아버지는 "가자" 이 한마디를 하셨다. 같이 계시던 이모의 "어떡할꼬" 이 한 마디 말고는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5시간을 달려 새벽 4시 쯤 할아버지 댁에 도착했다. 처음 할머니가 모셔진 방에 들어가 절을 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그제서야 실감을 했던걸까. 할머닌 부모님이 결혼하고 얼마 안되어 중풍으로 쓰러지셨기에 내 기억 속 할머니는 항상 방에 앉아 계시거나 누워계셨고 아니면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 겨우 걸음을 때는 운동을 하는 모습 밖에 없었다. 난 할머니의 정이란 걸 받아본 적 없다. 오히려 어머니를 비롯한 네 며느리가 힘들어하던 모습을 쭉 지켜보며 자랐다. 그렇게 10여 년동안 할머니는 해가 갈수록 몸은 안 좋아졌고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 우리 집안은 조금씩 준비를 해왔다.

장례란 걸 처음 치뤄봤다. 시골에서 옛날부터 치뤄오던 전통 장례식이었다. 사랑방에 할머니를 모셔놓고 아버지와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는 삼베 옷에 지팡이를 들고 손님이 올 때 마다 절을 하고 곡을 하셨다. 마당에 상을 깔고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3일이 지나고 할머니의 상여는 마을 한바퀴를 돌고 볕드는 언덕에 자리하셨다. 울었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그냥 눈물이 났다. 미친 듯이 더운 여름이었다.
 



두번 째는 이모부의 죽음이었다. 몇 년전부터 몸이 안 좋으시던 이모부였다. 어렸을 때 합께 휴가 갔던 기억과 돌아가시기 바로 전 명절에 뵈었던 약간 호전되셨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연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었다. 시골에서의 장례식과 너무 다른 모습이었던지라 생경했고 또 약간 삭막했다. 많이 울었다. 사촌언니와 이모의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는 순간 눈물이 쏟아져 참을 수가 없었다. 이모부가 돌아가신게 슬퍼서 운 것도 아니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언니와 남편이 먼저 간 이모가 안쓰러워 운 것도 아니었다. 내가 보였다. 언젠가 저 자리에 앉아있을 내가 보여 너무 마음이 아팠다. 눈물 흘리고 있는 언니의 슬픔과 절망이 느껴져 가슴이 쓰라렸다. 두려웠다.

1년 전에는 다른 이모부 한 분도 돌아가셨다. 얼마전엔 아버지 친구 분이 돌아가셨단 얘기도 전해 들었고.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내 선배들, 내 친구들의 부모님 소식도 하나하나 듣게 될 나이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조금씩 누군가가 주변의 사람을 하나씩 잃는 모습을 보고 그 방법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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