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만들려는 것은 바로 인간의 냄새였다. 물론 지금 만드는 것은 임시 방편에 불과하겠지만 그는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는 인간의 냄새를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사실 <인간의 냄새>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의 얼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모두 냄새가 달랐다. 수천 명의 사람 냄새를 알고 있고, 태어날 때부터 냄새로 사람을 구분해 온 그르누이보다 그 사실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냄새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는 그런 냄새가 있었다. 단순화시키면 그 냄새는 대채로 땀과 기름, 그리고 시큼한 치즈가 섞인 것 같은 냄새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그 냄새를 지니고 있었고, 사람마다 기본적인 그 냄새에다 보다 세밀한 어떤 냄새를 추가로 갖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개인적 분위기를 좌우하는 체취였다...

...그는 인생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사랑과 바보 같은 존경심을 보여 주듯이 그 역시 자신의 증오를 보여 주고 싶었다. 단 한 번만, 꼭 한 번만이라도 그의 진짜 모습을 그대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유일한 감정인 증오에 대한 타인의 반응을 알리고 싶었다...






평균적인 <인간의 얼굴>이라 함은 아마도 눈코입과 귀 따위를 갖춘 그런 얼굴일 터. 그렇다면 평균적인 <인간의 냄새>란 과연...? 다른 작가들이 눈으로 세상을 느끼도록 묘사한다면,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독자들이 코를 통해 세상을 느끼게 만든다. 책을 읽는 동안 어쩌면 나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렸을지도 모를 일. 특히나 초반에 파리의 악취를 냄새로 묘사할 때면 나도 모르게 눈이 찌푸려지고 숨이 턱 막히는게 혹시 내가 18세기의 파리 한가운데 서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동시에 경험하게 될 정도다.

그르누이. 자신의 정체는 드러내지 않은 채(아니,, 어쩌면 드러내지 못한다는게 옳을지도), 코로 타인의 숨겨놓은 깊숙한 치부까지도 모두 파악해버리는 섬뜻한 소년이다(소년이라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처음에는 그저 '그르누이'라는 한 인간에 대한, 그리고 그의 삶에 대한 호기심에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다. 하지만 곧 그런 호기심은 동정과 연민으로 대체된다. 그가 산 속 동굴에서 자신에게 냄새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겪는 정신적인 공황을 정점으로 말이다. 그래. 나에게 냄새가 없다는 것은 타인 뿐만 아니라 내 눈에조차 나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투명인간이라는 말과 같을텐데. 난 왠지 '자아의 붕괴'라는 말이 불현듯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감정들도 얼마 가지 못한다. 너무나 천진난만한 그의 수집활동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너무나 순수한 악(惡)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그걸 넘어선 전희를 느끼게 된다고 해야할지도. 그래서일까,, 그가 거쳐간 사람들은 모두 불행해진다. 하나같이 모두.

결말은 정말이지 당혹스럽다. 이야기의 절정과 긴장감의 최고조에서 내려올 새도 없이 그곳에서 갑자기 발이 묶여버린 느낌. 책을 덮고서도 한동안 계속 나는 그 속에서 떠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 그는 그 순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심어린 미소를 지었을 거라고, 설사 그게 세상을 향한 자조섞인 비웃음일지라도. 






- 난 '스티브 부세미'만 보면 '그르누이'가 떠오른다. 초광(狂)인 연쇄살인범으로 나와 바람부는 황량한 마을에서 여자 꼬마아이와 함께 인형놀이를 하며 찬송가(He's Got The Whole World In His Hands)를 부르는 "콘 에어"의 장면을 보는 순간 난 정말 외치고 싶었다. '그르누이'가 책 밖으로 나와버렸다고! 그리고 여지껏 '스티브 부세미 = 그르누이'라는 공식을 깨지 못했다. 그나저나 야밤에 그의 사진을 검색하다 심히 놀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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