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가 울어.

혼잣말. 2005. 6. 16. 17:29

오늘 초등학교 근처에서 병아리를 팔았나보다. 아랫 집에서 계속 병아리가 삐약삐약 거린다. 쉴새없이 삐약삐약 삐약삐약,, 아무래도 오늘 기분이 꿀꿀한데 병아리까지 애처롭게 울어주는구나.


정말 복잡미묘한 기분이 든다. 날카로운 신경에 들으니 짜증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괜히 노란 병아리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초등학교 때 내가 병아리 한두마리 사왔던 기억이 괜히 떠오르기도 하고, 어떻게 될지 뻔히 보이는 병아리의 운명이 안타깝기도 하고.

누구나 그랬겠지만, 나도 내동생과 함께 매년 따뜻해 질 때면 연례행사처럼 병아리를 사들고 집에 왔다.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병아리를 살 때의 그 두근거림과 긴장감이. 만약 그 날따라 돈이 없었다면 아쉽게 구경만 해야하지만 마음은 편하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만약 내 호주머니 속에서 동전이 딸랑거릴 때면 난 선택의 기로에 서게된다. 그 귀여운 것들을 내 품에 안고 싶은 유혹과 생명체를 하나 사들고 집에 들어가게 되는 걱정사이에서. 뭐, 내가 사지 않아도 내동생이 언제나 사오곤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고민이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그건 정말이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난 그 병아리들을 만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무서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의 표면을 만진다는게 너무나 생경했고 그 촉감은 뭐라 말할 수 없도록 아스트랄(..;;)했기에, 그냥 가만히 바라만 봤다. 가끔은 정말 큰 용기를 내어 한두손가락으로 털을 만져보기도 했지만.

그 병아리들은 일찍 죽는다. 난생 처음 병아리를 산 이튿날, 내동생이 엄마에게 외쳤다. "엄마, 병아리가 누워서 자!" 잘 모르겠다. 나도 온 몸이 뻗뻗하게 굳은 채로 바닥에 누워있는 병아리를 본 적이 있는지. 어쩌면 봤음에도 나 스스로 그 장면을 기억 속에서 지운 건지도. 그렇게 매번 병아리는 죽었다.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부모님의 충고에 많이 만지지도 않고,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으려 애쓴 우리 남매의 노력에도. 한번의 예외는 있었다. 아주아주 잘 자랐다, 이러다 정말 닭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할 정도로. 그런데 어느날 아침, 병아리가 박스에서 사라졌다. 알고보니 엄마가 박스 뚜껑을 닫는 걸 잊은 그날 밤, 병아리의 삐약거림을 듣고 일층이었던 우리집 베란다를 고양이가 넘어 병아리를 납치해 잡수신 것이다. 그것도 베란다 밖 흙바닥에 흔적을 남겨놓으면서.

처음에는 그 죽음이란게 안타까웠겠지. 하지만 그 과정이 반복될수록 아침에 그들이 살아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언제나 엄마의 몫이었고 검은 봉지에 넣어 처리하는 것도 엄마의 몫이었다. 우린 그저 기대반 걱정반으로 그들을 데려오고, 살아있는 그들을 감상할 뿐이었다. 생각해보니 매번 아무런 말씀도 안하시고 우리 남매를 위해 그들을 잘 돌봐주고 뒤처리 해주신 엄마가 감사하다!

아빤 말씀하셨다. 제일 팔팔한 놈을 골라오라고. 우리 나름대로 선택을 했다. 그래도 어떤 병아리는 집에 들어와 바닥에 놓는 순간부터 가만히 서서 눈을 감고 졸기만 했고, 어떤 병아리는 상자에 넣자마자 그 속에서 나오려고 파닥파닥 뛰어다니기도 했다. 뭐, 결국은 다 죽지만 말이다. 그러고보니 아빠가 그런 말씀도 하셨군. 모이를 한꺼번에 주질 말라고. 미련하게 주는대로 다 먹기 때문에 배불러 죽는다고 하셔서 우린 모이도 아주 심사숙고하며 주기도 했다.

그 애들은 어땠을까. 어떤 기분이었을까.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 건지도 모르지 않았을까. 암흑, 왠지 암흑 속이었을 것 같다. 뭐, 물이랑 모이를 잘 찾아먹기는 했다만. 어떨 땐 두 마리를 사오기도 했다. 혼자 있음 외롭다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도 정말 웃긴 상황이다. 서로 안면도 없던 두 마리가 우리 집에서 처음 만나 같이 지낸들 그 외로움이 덜어졌을까. 하긴 그 외로움을 느꼈을까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생각해본다. 과연 약하게 태어나 아이들의 손에 그렇게 죽는게 낳을까, 아님 건강하게 태어나 양계장에 크는게 낳을까. 양계장에 남아있다 한들 그닥 좋은 대우는 못받지 않는가. 동물학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말이다. 하긴, 요즘은 초등학교 앞에서 팔리는 병아리들의 수난도 말 못할 정도이긴 하다. 염색물에 담겨 어울리지도 않는 색깔로 변하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혐오감을 주는 입장이 되기도 하고, 고약한 애들한테 걸리면 그나마 작은 관심 한번 받아 보지도 못한 채 고층에서 떨어지기도 하니깐.

아직도 운다, 삐약삐약 삐약삐약. 이 소리가 과연 며칠이나 갈지.. 그래도 너네는 복받은 놈들이야,, 임마. 하긴 나도 오늘이 지나면 아마 이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너희들의 울음을 구별하지 못할테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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