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 11:14.

영화. 2005. 6. 9. 21:01


그렇다. 인생사 모두 돌고돌고돌아서 서로 얽히는 것.

난 이런 내러티브에 굉장한 매력을 느낀다. "락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나 "아모레스 페로스", "매그놀리아", "21그램"처럼 아무런 관계도 없던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상황과 사건에 휘말리고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으려 애쓰는 과정에 결국은..;;) 최악의 한 시점에 서로 맞닥뜨리는 그런 이야기. 그들은 모두 예정에 없던 어긋난, 그리고 동시다발적인 사고로 인해 톱니 바퀴처럼 한칸한칸 맞물려 간다. 그때는 이미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인과관계가 불명확해져 있고, 우연과 순간의 선택은 결국 그 도달점을 향해 서로를 달려가게 만든다.

솔직히 이 영화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가볍다. 주인공들도 좀 맹한 구석이 있어 그다지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사건을 터뜨리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다. 그리고 웃기다. "락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와 비슷하다. 그 정교함을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극의 전개나 카메라의 시선, 상황의 아이러니 등에서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게 만든다. 다행히 감독도 관객들에게 '인생의 무게' 따위의 생각을 하게 만들 의도는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다른 영화들, 특히 "21그램"같은 경우는 한동안 머리가 아플 정도였는데 말이다.

왠지 이런 영화를 보고나면 "운명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 내금 내가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 이 모두가 잠깐의 선택에 의해 전혀 다른 상황으로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이제껏 내가 신중하게, 혹은 아무런 생각없이 행했던 그 수 많은 선택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우연들이 그 사이사이를 메꾸었을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나와, 그리고 그들의 실타래 같은 선택의 갈래 중 하나로 , 어쩌면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를 확률 속에서 만남을 가지고 이 한 지점에 모여있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어떤 선택과 우연에 의해 언젠가 다시 흩어질지 모르는 순간과 시간이기에 현재가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PM 11:14. 난 이시간 누군가와 어떤 만남을 가졌는가.





- 너무나 안타깝다. 이번엔 정말 한 관을 통째로 빌려서 볼 수 있었는데 말이다. 아마 나와 함께 영화를 봤던 그 사람도 같은 생각을 했겠지..;;;

- 포스터 속에 당당히 주연인 듯 자리잡고 있는 '힐러리 스웽크'. 상당히 생뚱맞은 포스터다, 정말. '힐러리 스웽크'가 우울한 분위기를 한껏 풍기고 있는 포스터에 속아 영화를 본 사람들이면 굉장히 실망했겠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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