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s.

책. 2005. 2. 28. 17:36


구스타브 클림트 作.









...


여자는 눈을 감고 기다린다.

꽃이 가득한 들판에 무릎을 꿇고 남자의 목에 팔을 둘러 매달린 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언제부터 그 자세로 기다려 왔는지,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오랜 기다림의 자세를 풀지 않은 여자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여자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남자의 두 손이 여자의 고개를 붙잡고 비스듬히 돌려도, 남자의 마른 입술이 뺨에 닿아도, 여자의 기다림은 끝나지 않난다. 기다림이 키워낸 황금빛 덩굴이 여자의 발목을, 종아리를, 무릎 안쪽을 휘감으며 들판 전체로 퍼져나가 마침내 그녀 자신이 들판에 솟아오른 커다란 꽃나무로 변해가도, 여자는 눈을 감고 온몸을 내던져 기다리기만 한다.

기대감의 표현인 듯 반짝이는 꽃과 별, 그 속에서 여자의 마음이 기다림의 탑을 만들어 나간다. 모든 것을 잊고, 사랑의 상념도 잊고, 매달려 있는 남자도 잊고, 그러다 기다림을 시작한 자신의 욕망은 물론이고 자신의 존재마져 잊어버린다. 오직 기다림만이 남은 그 여자의 세계. 그 세계를 둘러싼 황금빛 안개는 여자가 시간과 공간을 잊고 낯선 꿈에 잠긴 채 몇십 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 신성림, "클림트, 황금빛 유혹"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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