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키소스.

책. 2005. 3. 1. 00:50



...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갈망했다.
그가 감탄해 마지 않았던 대상은 그 자신이었다.
그는 좇는 동시에 쫓기고 있었고,
자기가 피워올린 불꽃에 자기가 타들어가고 있었다.
무정한 샘물에 수없이 입술을 갖다댔으나 허사였고,
영상의 목을 만지려고 수없이 물에다 손을 넣었으나
그는 끝내 자신을 만질 수 없었다.
그는 자기가 보고 있는 영상이
다름 아니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격정으로 달아올랐고,
그의 눈을 속이는 환상에 흥분했다.

불쌍하고 어리석은 소년아.
그대를 피해 달아나는 영상을 붙잡으려 한들 무엇하리?
그대가 좇고 있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 뿐.
눈을 돌려 옆을 보라.
그러면 그대가 사랑하는 대상은 사라져버릴 터.
그대가 보고있는 것은 그대의 영상이 만들어낸 그림자에 불과할 뿐.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닐진대.
그대가 거기 있으면 그림자 역시 거기 있을 것이며,
그대가 그러고 있는 한 그림자도 영원히 그러고 있을지니.
그대가 떠나면,
그대가 떠날 수만 있다면,
그림자도 떠난다네.

...



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
그림 <에코와 나르키소스>, J.W.워터하우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