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다 괜찮다.

책. 2009. 5. 23. 05:53

과거에 존재하는 그 아이가 있잖아요. 그 아이가 처해 있는 구체적인 상황을 우리 모두 각자 너무 잘 알고 있어요. 바람이나 기온, 불빛까지도 다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 아이에게 지금 어른이 된 내가 찾아가는 거에요. 그래서 그 아이를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달래주는 거죠. "괜찮다, 너는 그래도 잘 클 거야. 내가 왔잖아"라고 하면서, 지금 내가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위로의 말과 격려의 말을 해주는 거에요. 그런데 그게 상처가 깊을수록 스무 번 해도 잘 안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니깐 시간 날 때마다 하는 거에요. 그 아이가 내 머릿 속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사라져요. 그래서 그 다음에 걔가 사라지면 그 다음의 기억, 힘없고 무력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 어린아이, 외롭고 인정받지 못했던 그 아이에게 또 가는 거에요. 오늘의 내가 가서 또 안아주고 얘기해주는 거에요. 그런 아이를 보면 할 수 있는 모든 위로를 해주고, 그 아이를 꼭 껴얀아주고, 걔랑 같이 있어주는 거에요. 걔가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많이 울어야 해요. 내 기억 속의 아이를 위해서 많이 울어줘야 해요. 내가 보니깐 상처를 씻어내는 데는 눈물 밖에 없더라고요. 누군가 자기를 위해서 울어줘야 되는데, 그게 자기 자신이어도 되잖아요. 진정으로 그 상황에 가서 울어줘야지, 막연하게 내가 우울해, 슬퍼, 그럴 게 아니라 정확한 상황에 가서 하나하나 해야 해요. 기억나는 모든 곳에 가서. 무력했던 시절까지.

- 공지영, "괜찮다, 다 괜찮다"



난 몇 명의 아이들을 찾아가야 할까.
그 아이들을 얼마나 달래주고 울어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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