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뱀파이어 영화는 처음 봤다. 이전의 뱀파이어에 대한 통속적인 룰을 깨지 않으면서 그 어떤 과장이나 미화도 없이, 마치 인간이 사는 이 세상 어느 곳이든 에일리처럼 그들이 섞여살고 있는 거라고 여겨질 정도로 영화는 담담하게 그린다. 살기 위해서 인간을 죽여 피를 마셔야 하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그 사실을 숨겨야 하고... 참으로 처절한 일상이다. 오스칼을 괴롭히는 같은 반 아이들에 대한 묘사도 굉장히 사실적이다. 그 안에도 계급이 있고 갈등과 함부로 반항할 수 없는 힘의 관계도 존재한다. 극적인 연출 없이 잔잔하게 그리는데도 뱀파이어의 잔인함과 세상의 잔인함, 인간의 잔인함이 느껴져 끔찍함과 공감과 연민의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게 된다.

오스칼의 찰랑이는 금발 머리와 노랗고 긴 속눈썹이 참 인상깊다. 여자아이처럼 이쁘장하면서도 칼을 들고 찌르는 상상을 할 정도로 속에 품은 분노와 행하지 못하는 좌절, 그리고 한번씩 비춰지는 경멸의 감정들을 내가 읽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무서운 아이다. 에일리는... 그저 이 한 장면으로 설명된다. 오스칼 앞에 처음 등장 할 때 정글짐 위에서 땅으로 사뿐히 내려앉는 이 장면. 그 잠깐 동안의 시간이 아직도 슬로우비디오처럼 눈에 선하다. 이 한 씬으로 에일리가 아름답지만 신비한, 보통의 존재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후로 난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못하고 모두 눈에 담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었다.

오스칼과 에일리가 서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정말 13세의 아이로서 드러나는 서툼과 어른들 못지않은 노련함, 그리고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설레임과 상대의 처지에서 느끼는 안쓰러움과 애절함이 느껴져서 마음이 짠해졌다.




다음 날 아침이면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여있어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지나고, 아름답고 서정적이지만 왠지 모를 무료함이 물씬 풍기는 스웨덴의 이미지가 영화 속에 그대로 묻어난다. 쳇바퀴처럼 계속될, 결말이 훤히 보이는 그 둘의 여행이 아마 스웨덴의 그 여운 때문에 한층 더 비극으로 보이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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