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지...

혼잣말. 2008. 11. 21. 00:56


요즘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면 내 자신이 작아지는 것 같다.

항상 내가 가져왔던 나에 대한 자신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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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뱀파이어 영화는 처음 봤다. 이전의 뱀파이어에 대한 통속적인 룰을 깨지 않으면서 그 어떤 과장이나 미화도 없이, 마치 인간이 사는 이 세상 어느 곳이든 에일리처럼 그들이 섞여살고 있는 거라고 여겨질 정도로 영화는 담담하게 그린다. 살기 위해서 인간을 죽여 피를 마셔야 하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그 사실을 숨겨야 하고... 참으로 처절한 일상이다. 오스칼을 괴롭히는 같은 반 아이들에 대한 묘사도 굉장히 사실적이다. 그 안에도 계급이 있고 갈등과 함부로 반항할 수 없는 힘의 관계도 존재한다. 극적인 연출 없이 잔잔하게 그리는데도 뱀파이어의 잔인함과 세상의 잔인함, 인간의 잔인함이 느껴져 끔찍함과 공감과 연민의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게 된다.

오스칼의 찰랑이는 금발 머리와 노랗고 긴 속눈썹이 참 인상깊다. 여자아이처럼 이쁘장하면서도 칼을 들고 찌르는 상상을 할 정도로 속에 품은 분노와 행하지 못하는 좌절, 그리고 한번씩 비춰지는 경멸의 감정들을 내가 읽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무서운 아이다. 에일리는... 그저 이 한 장면으로 설명된다. 오스칼 앞에 처음 등장 할 때 정글짐 위에서 땅으로 사뿐히 내려앉는 이 장면. 그 잠깐 동안의 시간이 아직도 슬로우비디오처럼 눈에 선하다. 이 한 씬으로 에일리가 아름답지만 신비한, 보통의 존재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후로 난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못하고 모두 눈에 담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었다.

오스칼과 에일리가 서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정말 13세의 아이로서 드러나는 서툼과 어른들 못지않은 노련함, 그리고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설레임과 상대의 처지에서 느끼는 안쓰러움과 애절함이 느껴져서 마음이 짠해졌다.




다음 날 아침이면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여있어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지나고, 아름답고 서정적이지만 왠지 모를 무료함이 물씬 풍기는 스웨덴의 이미지가 영화 속에 그대로 묻어난다. 쳇바퀴처럼 계속될, 결말이 훤히 보이는 그 둘의 여행이 아마 스웨덴의 그 여운 때문에 한층 더 비극으로 보이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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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작, 박쥐 & 마더.

영화. 2008. 11. 18. 14:20

박찬욱 감독의 "박쥐".





봉준호 감독의 "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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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혼잣말. 2008. 11. 13. 02:21


내가 '죽음'이란 걸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할머니의 죽음이었다. 중학교 3학년 여름휴가 때였다. 강원도 정선의 어느 강,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쯤 모닥불을 피우려고 하던 찰나 아버지의 폰으로 전화가 왔고, 아버지는 "가자" 이 한마디를 하셨다. 같이 계시던 이모의 "어떡할꼬" 이 한 마디 말고는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5시간을 달려 새벽 4시 쯤 할아버지 댁에 도착했다. 처음 할머니가 모셔진 방에 들어가 절을 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그제서야 실감을 했던걸까. 할머닌 부모님이 결혼하고 얼마 안되어 중풍으로 쓰러지셨기에 내 기억 속 할머니는 항상 방에 앉아 계시거나 누워계셨고 아니면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 겨우 걸음을 때는 운동을 하는 모습 밖에 없었다. 난 할머니의 정이란 걸 받아본 적 없다. 오히려 어머니를 비롯한 네 며느리가 힘들어하던 모습을 쭉 지켜보며 자랐다. 그렇게 10여 년동안 할머니는 해가 갈수록 몸은 안 좋아졌고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 우리 집안은 조금씩 준비를 해왔다.

장례란 걸 처음 치뤄봤다. 시골에서 옛날부터 치뤄오던 전통 장례식이었다. 사랑방에 할머니를 모셔놓고 아버지와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는 삼베 옷에 지팡이를 들고 손님이 올 때 마다 절을 하고 곡을 하셨다. 마당에 상을 깔고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3일이 지나고 할머니의 상여는 마을 한바퀴를 돌고 볕드는 언덕에 자리하셨다. 울었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그냥 눈물이 났다. 미친 듯이 더운 여름이었다.
 



두번 째는 이모부의 죽음이었다. 몇 년전부터 몸이 안 좋으시던 이모부였다. 어렸을 때 합께 휴가 갔던 기억과 돌아가시기 바로 전 명절에 뵈었던 약간 호전되셨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연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었다. 시골에서의 장례식과 너무 다른 모습이었던지라 생경했고 또 약간 삭막했다. 많이 울었다. 사촌언니와 이모의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는 순간 눈물이 쏟아져 참을 수가 없었다. 이모부가 돌아가신게 슬퍼서 운 것도 아니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언니와 남편이 먼저 간 이모가 안쓰러워 운 것도 아니었다. 내가 보였다. 언젠가 저 자리에 앉아있을 내가 보여 너무 마음이 아팠다. 눈물 흘리고 있는 언니의 슬픔과 절망이 느껴져 가슴이 쓰라렸다. 두려웠다.

1년 전에는 다른 이모부 한 분도 돌아가셨다. 얼마전엔 아버지 친구 분이 돌아가셨단 얘기도 전해 들었고.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내 선배들, 내 친구들의 부모님 소식도 하나하나 듣게 될 나이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조금씩 누군가가 주변의 사람을 하나씩 잃는 모습을 보고 그 방법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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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혼잣말. 2008. 11. 10. 01:30



"손!"하면, 턱하니 내게 손 내밀어 줄

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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